승리와 패자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은 최고의 기쁨을 누린다. 경기에 진 사람도 그 도전에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건 싸움에서 승리자와 패배자의 모습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패배자 에게는 수치와 굴욕만 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었던 제자들을 승리자와 패배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분들은 죽음으로 끝나버린 패배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그렇게 손가락질과 저주를 받는 인생을 자처하면서 그 삶을 기뻐했던 것일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 5:41]
제자들은 이미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그들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제자들은 세상에서 순교를 당하며 죽어가고 있었으며, 세상의 힘은 제자들을 수치를 당하는 패배자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세상의 위협에 제자들을 걱정하셨던 말씀하신적도 있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양처럼 연약했지만 이리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 제자들은 그렇게 패배자의 삶을 자처한 것일까?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행 26:29]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잡혀갔을 때 바울이 재판하던 사람들에게 외쳤던 말이다. 바울은 자신을 패배자로 만들려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을 했던 것이다. 바울과 제자들은 무엇을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했을까?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삶이 가장 중요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가장 중요한 승리의 삶으로 믿고 확신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얻는 승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다른 모든 것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느끼지도 않는다. 다만, 제자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본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를 생각해 보라. 그분은 사람들에게 승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스데반 집사님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다. 최후의 순간에도, 그분은 어떤 두려움과 떨림도 없었을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한 죽임을 당하기에 합당한 삶으로 여기면서, 오직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