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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내가 담아야 할 것


어릴 적 시골 동네에 과일들을 키우는 과수원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우리 집은 포도밭과 복숭아밭과 사과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르던 과일들을 거둘 때가 되면 추수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당시 과일을 추수하기 위해서 과일을 담을 나무 궤짝을 제작하는 일이었 습니다. 지금은 모든 과일을 종이박스에 담아내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나무로 궤짝을 만들어 과일을 담아야 했습니다. 저는 동네 어른들이 못질을 해서 궤짝을 만들어 놓으면, 궤짝을 옮겨주거나, 간간히 어른들이 쉴 동안 어설픈 실력으로 못을 박으며 궤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궤짝은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쌀겨와 함께 과일들을 담아냅니다. 그런데 궤짝들은 다 똑같은 모양이지만 그것들은 담기는 과일에 따라 이름이 달라집니다. 사과를 담으면 사과 궤짝이 되고 복숭아를 담으면 복숭아 궤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사과궤짝과 복숭아 궤짝보다 더 귀중하게 취급되는 궤짝은 아랫집의 배 궤짝이었습니다. 그때 어릴 적에는 왜 우리집 궤짝보다 아랫집의 배가 담긴 궤짝이 더 비싼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과와 복숭아보다 배가 더 가꾸기가 힘들고, 그래서 비싸고 또 쉽게 상처가 생기기 때문에 배가 더 비싼 값을 받는 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담겼느냐에 따라 궤짝의 운명과 대우가 달라졌던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혜가 들은 사람은 지혜 자가 되고 애국심이 들은 사람은 애국자가 됩니다. 패배주의가 담기면 패배주의자가 되고 꿈이 담기면 꿈꾸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인생에게 담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입니다. 그 마음에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담을 때, 우리는 가장 존귀한 그릇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에게 담겨야 할 것이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담겨야 할 것 역시 예수님입니다. 무슨 과일이 들었느냐에 따라 궤짝의 이름이 달라지듯이 예수님 때문에 성도의 삶도 달라집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그 안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담고 있기 때문에 성경과 세상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담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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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담아야 할 것
  • 2017-08-22
  • 김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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