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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즐거운 명절


어린 시절 명절은 언제나 기다려지던 날이었다.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은 어린 나에게는 또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분들이었다. 어떤 분들의 말투는 언제나 화가 난 듯 무서운 말투로 말씀하는 분도 있었지만, 왠지 나는 그런 말투도 무섭지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온 사촌들과 할머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가 짧게만 느껴졌고, 개구쟁이라고 혼을 내도 사촌누나가 좋아서 졸졸졸 따라다니다 누나의 손을 잡고 꿈을 꾸며 잠을 자기도 했다. 어릴 적 명절 아침이면 제사를 드렸다.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할아버지와 온 가족들이 명절이면 제사를 드렸고, 또 할아버지와 어른들은 선산으로 성묘를 하러가셨다.

내가 선산에 갔던 것은 고등학생이 되면서였다. 어릴 적에는 선산에 따라갈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선산에 올라갈 나이가 되어 할아버지를 따라서 선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사를 드리고 돌아가신 조상들의 무덤에 절을 했던 날이었다. 삼촌들은 언제나 할아버지가 무섭다고 말했고, 삼촌들은 할아버지에게 날마다 꾸중을 들어야 했지만,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를 이겨먹을 수 있었고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편이었다. 그런데 그날 선산에서는 감히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처음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짐한 것이 있다.

 

내년에는 명절에 제사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게 해주세요...

 

그렇게 2년여를 지내고 우리 집안은 예배를 드리는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는 작은 시골교회에 19살의 풋내기 전도사였지만, 명절을 맞아서 가정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명절에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절대 내가 선산에서 다짐했던 기도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할아버지의 반대에도 고모들은 가정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고모들은 우리의 가족들이 믿음으로 서기를 원했고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직 믿음으로 살고계시고, 심지어 막내고모는 시골 촌부의 아들이며 목발을 짚어야 하는 총각의 믿음을 보고 결혼하여 오직 믿음으로 살고 계신다. 그런 고모들이 우리의 집안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또한 할머니도 몰래 몰래 신앙 생활을 하시면서 우리의 가정의 믿음의 뿌리를 놓으셨다. 우리 가족들에게 이런 믿음의 뿌리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명절이면 제사를 드리는 가정에서 이제는 명절이면 예배를 드리는 가정으로 바꾸어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모들과 이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 친지 분들은 우리 집안을 위해서 기도하신다. 지금도 형제분들 중에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가족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명절이 되면 제사와 예배의 문제로 고민하는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거역할 수 없는 어르신들의 분노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이 좌절과 포기의 눈물이 아니라 믿음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명절이면 걱정이 앞서는 명절이 아니라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포기하지 않고 가족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다. 그리고 명절이면 만나는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믿음의 집안으로 서기 위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한다. 그렇게 가정은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서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명절은 여전히 나에게 개운치 않는 시간이 될 뿐이다. 이제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이번 명절부터 내가 가족들의 눈물의 씨앗이 되어 지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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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명절
  • 2016-09-13
  • 김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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