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교회

 > 예배와말씀 > 목회칼럼

목회칼럼

 

신앙의 끓는점과 어는점


 

 물은 가열하면 100도가 되어야 끓어 수증기가 되고, 식으면 0도에 얼어버린다. 이렇게 세상의 물질들은 끓는점과 어는점이 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물질들이 모두 100도에 끓어오르는 것은 아니고 각각 끓는점이 다르다고 한다. 알코올은 79, 금은 2808도에 끓어오르고, 소금은 1400도가 끓는점이라고 한다. 어릴 적 과학시간에 소금물을 소금과 물로 분리할 때 끓는점을 이용해, 물이 100도에 끓어올라 증발해 버리면 하얀 소금가루만 남았던 기억이 난다.

 

 신앙생활에도 끓는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에 따라 끓는점도 제각각 다른 것 같다. 그러면 나의 신앙의 온도는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 나의 신앙이 끓어오를까? 분명한 것은 지금 나의 신앙의 온도를 끓어올라 변화될 수 있는 온도로 높이지 않으면, 나는 새롭게 변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3:16]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미지근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풍요로웠다. [3:18] 말씀을 보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지역이 많은 금이 있고, 흰옷의 재료인 목화밭이 풍부하고, 안약을 사용할 정도로 의술이 발달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풍요함이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끓어오르지 못하고 미지근하게 만들었다. 신앙이 끓어오르지 않으면 남을 의식하게 되고, 신앙은 외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광대 같은 신앙이 될 뿐이다.

 

 그런데 미지근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이 혹시나 나를 향한 경고의 말씀은 아닌지 우리는 스스로 나의 신앙의 온도를 측정해 보아야 한다. 겨우, 고작, 나의 신앙의 온도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는지... 냉랭하고 다 식어버린 온도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상급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오히려 나의 신앙은 식다 못해 얼어버리고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결코 나의 거짓과 얄팍한 꼼수에 속아 넘어가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 앞에는 정직과 진실만이 통한다. 가슴으로 하지 않는 신앙생활과 자원하는 마음이 없는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책망받을 일이다. 성도는 나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내 신앙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가슴으로 해야 한다.

 




  • 자동등록방지 이미지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신앙의 끓는점과 어는점
  • 2022-12-20
  • 안나리
  • 411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