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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바울 사도는 한때 사울이라고 불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던 박해자였다. 이때의 사울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이 바른 신앙의 길이라고 생각했다(9). 스데반 집사님을 죽인 것도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한 일이었다. 26:10절을 보면 사울은 성도들을 잡아들이고, 스데반 집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즉 사울은 스데반 집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을 죽였던 유대 열성당원이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26:10)

 

또한 사울은 외국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사울이 외국에 다녀온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사울은 여러 나라의 회당을 돌면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박해하고 있었고, 그들을 끌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심판을 자행했던 것이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26:11)

 

예수님은 그런 박해자였던 사울을 굴복시키신다. 흔히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던 사건을 사울(바울)의 회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회심이라기보다는 사울의 굴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울은 절대 예수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기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은 예수님을 사기꾼처럼 여기고 그 제자들도 예수님과 한통속으로 여겼기 때문에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 사기꾼의 무리를 척결하려는 마음뿐이었다.

 

예수님은 사울을 강제로 복음 앞에 굴복을 시킨다. 사울 앞에 예수님이 당당히 나타나셨다. 예수님이 사울에게 하신 말씀은 사울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말씀이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26:14()]

 

가시채란 황소를 다루기 위한 채찍을 말한다. “가시채 뒷발질이란 채찍질하는 가시채에 성질을 내고 걷어차 버리는 못된 성질을 부리는 소들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가시채에 신경질이 난다고 뒷발로 걷어차 보아야 자신의 뒷발만 고생이고 채찍질의 아픔은 더 거세질 뿐이다. 예수님은 사울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이 결국은 황소들의 가시채 뒷발질이라고 책망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순간 사울의 인생은 원인무효가 된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신앙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 더 이상 송아지가 가시채를 뒷발질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겼던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은혜 앞에 서는 순간, 우리의 지난날의 모든 죄는 원인무효가 되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받고, 용서받을 수 있기에 이제 우리는 과거에 매여서 가시채 뒷발질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십자가다. 바울 사도도 지난날의 자신의 것을 모두 버려버리고,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헛된 뒷발질을 멈추고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신 십자가를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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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 2018-10-16
  • 김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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