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교회

 > 예배와말씀 > 목회칼럼

목회칼럼

 

8월 21일 (송아지 코뚜레)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와 장난을 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언제나 할아버지 바지를 매미처럼 붙잡고 놀았고, 틈만 있으면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잡고 어깨 위로 올라타기도 했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내게 좋은 장남감이 되어주셨다. 할아버지는 내게 좋은 친구 같았다. 그런 할아버지가 무섭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송아지 코를 뚫고 코뚜레하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엉엉 울었던 때였던 것 같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고 할아버지께서 아빠와 함께 송아지의 코뚜레를 하게 되었다. 송아지를 기둥에 머리를 묶어놓고 아빠는 날뛰는 송아지가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할아버지는 하얗게 깎아 놓은 동그란 나무를 들고 송아지의 콧구멍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더니 여기다라는 외마디 말씀과 함께 단 번에 송아지의 코에 구멍을 내면서 코뚜레를 달아 놓았다. 송아지는 정말 아팠을 텐데 음메소리 한번 내지도 않고 왕방울만한 큰 눈에서 뚝뚝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하얀 가루를 송아지의 코에 뿌려주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라고 말씀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하얀 가루는 소금으로 소독을 한 것이었고, 송아지는 연신 흘러내리는 피와 콧구멍을 가득채운 소금을 혀로 날름거리며 엄마소에게 돌아갔다. 나는 송아지 코에 달린 코뚜레를 보면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울먹이며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저거 송아지 아픈데 왜 달았어!” “응 말 잘들으라고..,!”

너도 말 잘 들어야 한다. 말 안 들으면 코뚜레 달아 놓을거야...!”

나는 그때부터 한동안 말 잘 듣는 착한아이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무서워 감히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외양간에 걸려 있는 코뚜레를 쳐다 볼 때 마다 할아버지가 내 코에 코뚜레를 상상을 하면 정신이 번쩍들면서 감히 할아버지께 이전처럼 장난을 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마다 예수님의 은혜를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가 나를 구원했음을 알고도 못된 송아지처럼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고집불통의 신앙을 자랑하는 분들이 있다. 할아버지가 송아지의 코뚜레를 한 것은 외양간에서 자기 마음대로 잘났다고 날뛰며 말썽을 피우는 송아지를 말 잘 듣는 착한 송아지로 만들기 위해서 코뚜레를 해준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순종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못된 송아지처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그 십자가는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십자가가 되어지지만,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다면 고난의 십자가가 되어 질 수도 있다.

 

우리는 신앙의 삶 속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면 그 신앙은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살며, 은혜의 십자가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져야하는 십자가는 결코 은혜가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가 되어 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자동등록방지 이미지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8월 21일 (송아지 코뚜레)
  • 2016-08-23
  • 김성택
  • 1641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